2008.10.20

'한국 대중음악사'라는 책은 서태지를 위한 책일 뿐이다.

정말 오랜만에 책을 한 권 읽었습니다.
바쁜 시간을 쪼개서 읽기 시작한 책이었지만..
읽지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만 가득합니다.
어쨌든 읽었으니 조심스럽게 감상을 적어봅니다.

서태지는 왜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는가?
→ 출처:  ozzyz.egloos.com [보기]

대한민국 인터넷에서 서태지에 대해서 안좋은 얘기를 쓸 때는 서태지 팬들의 융단 폭격을 감당할 자신감을 가득 충전한 후.. 최종적으로 '쓰기 완료' 버튼을 클릭하기 전에 우황청심환이라도 하나 씹어먹은 다음.. 며칠 동안은 해당 글을 안본다는 비장한 각오를 가져야 한다.

 

일종의 깨서는 안될 금기라고나 할까? 하지만 자고로 떡밥이라는 건 그런 금기에서부터 시작되는 법이다.

 

가끔씩 인터넷을 통해 접하곤 하는 서태지에 대한 맹목적 호의에 가득찬 팬들의 시선은 서태지를 오히려 고립시키는 결과를 야기하는 느낌이 든다. 미디어들은 서태지를 소비하는 사람들을 이용하기 위해 서태지를 이용한다. 결국 서태지는 계속된 숭배(?)의 무한궤도 속에서 왜곡되고 있는 것이다. 언제까지나 견고할 것만 같은 무한궤도에 미세한 균열이 생겨서 궤도가 유지될 수 없는 순간이 오면 서태지는 어떻게 될까?

한국 대중음악사 - 통기타에서 하드코어까지
→ 출처:  aladdin.co.kr [보기]

'한국 대중음악사'라는 책 제목에 낚여서 오랜만에 책을 들었다. 그리고 내가 서태지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인내심의 끈이 끊어져 버렸다. 이 '한국 대중음악사 (통기타에서 하드코어까지)'라는 거창한 제목의 이 책은 극단적으로 얘기하자면 나쁜 책이다. 이 책이 나쁜 이유는 10가지도 넘지만 몇가지만 지적한다면 대략 이런 것들이다.

 

걸맞지 않은 제목을 붙임으로서 진지해야할 한국의 대중음악사에 대한 진정성을 깔아뭉갰다는 것, 서태지에 대한 맹목적 시선이 담겨있다는 것,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신세대와 기성세대라는 단어를 등장시켜 세대 간의 대립을 책 전체에 걸쳐서 남용하고 있는 것, 결정적으로 대중음악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은 둘째치고 밑바닥에 깔려있어줘야 할 기본적인 음악에 대한 지식조차도 담겨있지 않다는 것 등이다.

극단적인 팬의 극단적인 저서

'한국 대중음악사'라는 책의 앞부분에서는 그나마 참아줄 정도의 수준이었던 서태지 신격화가 뒷부분으로 넘어가면서 대충 5페이지마다 서태지.. 서태지.. 서태지.. 타령으로 읽는 이를 괴롭힌다.

 

하지만 저자 중 한명인 이혜숙의 프로필을 보면 이 책의 정체성을 알 수 있다.

 

"가요 칼럼니스트 이혜숙은 언제나 자기 자신을 '그냥 주부'라고 소개한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적당한 나이에 결혼을 하여 사랑하는 남편과 사랑스런 아이를 둔 행복한 주부이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그냥 주부' 이상의 무엇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음악에 대한 열정이다. 어릴 때부터 가요를 좋아했던 그녀는 서태지와 아이들 하이텔 팬클럽인 '또래네'의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통신문화 초기부터 이에 대한 관심을 가졌으며, 1994년부터는 buglist라는 이름으로 하이텔 대중문화 동호회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하이텔은 물론, 대학교 학보나 사보, 일간지 등에 가요, 통신문화, 팬클럽 문화 등에 대한 글을 기고해 오고 있다."

 

솔직히 안타까웠다. 이 땅의 대중음악이 얼마나 열악한 상황에 있었는가를 그대로 보여주는 프로필 아닌가? 이 땅의 가요 칼럼니스트라는 사람이 자신의 '한국 대중음악사'라는 타이틀을 내건 저서에서 '빠순이', '뽕끼' 등의 정제되지 않은 용어들을 구사하고, '키치 (Kitsch)'를 단순히 천박한 B급 문화로 정의해 버리는 것이 바로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현실이었다.

서태지를 우러러보는 주옥같은 내용들을 살펴보면...

1. 1992년에 서태지를 본 기성세대, 그리고 청소년을 비롯한 젊은 세대는 서태지의 음악성이 일시적인 것인가 아닌가 하고 의심하고 있었다. 그러나 1993년에 발표된 '하여가'는 누가 들어도 너무나 엄청난 음악이었으며 그 음악은 '난 알아요'를 간단히 뛰어넘고 있었다. 그리고 대중은 김수희, 이무송 등의 성인풍의 발라드나 트로트 음악이 매우 초라한 음악이라는 것도 알아차리게 되었다. (P.293)

 

서태지의 음악은 밑도 끝도 없이 너무나 엄청난 음악이라 얘기하고, 발라드나 트로트 역시 밑도 끝도 없이 매우 초라한 음악이라고...

 

2. 주류언론과 방송사의 공세는 서태지에게 폭 넓은 팬 층의 상실을 가져왔지만 다른 한편으로 서태지를 지지하는 다양하고 막강한 세력을 결집하도록 만들었다. 3집을 통해 서태지는 단순한 음악가 이상의 이미지를 획득하였고 이전까지 그를 관망하던 대학생, 교수, 직장인, 주부 등 다양한 세대들이 서태지 진영에 모여들었다. (P.337)


단순한 음악가 이상의 이미지는 도대체 어떤 이미지를 얘기하는지? 대학생, 교수, 직장인, 주부는 다양한 세대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직업군이라고 표현해야 맞다. 또한 저 직업군 중에서 다양한 세대라 할 수 있는 건 그나마 교수 밖에 없는 듯하고, 그나마 교수도 정교수가 아니라면 다양한 세대가 아니라 기껏해야 10년 터울 속에서 소화가 가능하다. 이렇게 따지자면 삼촌팬이라는 이름으로 중장년의 인기를 얻고 있는 원더걸스야말로 가요계의 지존이 될 듯.. 

 

3. 기성세대는 '잘못된 만남'을 '교실 이데아'의 대안으로 신세대에게 선사하였다. '잘못된 만남'의 대히트로 김건모는 마치 서태지와 아이들을 능가하여 전 세대를 아우르는 최고의 가수가 되어가고 있는 듯이 보였다. '잘못된 만남'이 성공하자 서태지를 공격하면서 김건모를 띄워 주었던 기성세대는 자신들이 '잘못된 만남'을 좋아하는 것처럼 행동하면서 스스로를 세뇌하고 있었다. 그들은 서태지를 견제하기 위해 김건모에게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기성세대의 마음 깊은 곳에는 '잘못된 만남'이 기성세대의 적성에 맞지 않는 노래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P.339)

 

뜬금없이 기성세대라는 모호한 집단을 규정하고.. 그 모호한 집단이 서태지를 공격하고 김건모를 띄웠다고 하고..  게다가 스스로 '잘못된 만남'을 좋아하는 것처럼 세뇌까지 했으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적성에 맞지 않는 노래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라니.. 개개인에 대한 독심술을 벗어나 특정 집단에 대한 독심술을 가지고 있는 저자가 존경스러워졌다.

대중음악사라는 제목이 부끄럽다

1. 서태지는 초등학교 5,6학년 경에 마이클 잭슨을 만났다. 어린 서태지는 마이클 잭슨을 들었을 뿐 아니라 문워크도 추었을 것이다. 당시 초등학생이 만난 팝 음악의 세계는 음악뿐만이 아닌 춤과 뮤직비디오의 새로운 세계였다. (P.231)

 

'추었을 것이다'라는 추측이 '대중음악사'라는 제목을 붙인 책에 나올 내용일까?

 

2. 김완선 1, 2집은 모두 산울림의 둘째 김창훈의 작품이다. 김창훈은 두 앨범을 통해 한국에서 최초로 유로 테크노 계열의 테크노 팝 음악을 선보였다. 당시 산울림은 1986년 9월에 발표된 11집 앨범을 통해 실험성 강한 테크노 팝을 선보였다. 산울림은 자신의 앨범과 김완선을 통해 새로운 음악적 도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산울림은 신중현의 후예답게 김완선에게 신중현 스타일의 비음 창법을 전수시켰다. (P.201)

 

산울림 11집은 김창완의 독자적 앨범에 가깝고, 김창훈의 김완선 육성 프로젝트도 김창훈의 독자적 액션이었다. 산울림이라고 묶을 수 있는 개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아무런 분석도 없이 산울림 11집이 테크노 팝이라는 얘기까지 발전시킨다. 게다가 신중현과는 음악적으로 상당히 다른 길을 걸어온 산울림에게 '신중현의 후예'라는 말도 안되는 평을 내리고 있다.

 

3. '울트라맨이야'가 크게 히트하면서 한국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콘, 레이지 어겐스트 머신, 림프 비즈킷 등으로 대표되는 뉴 메탈 장르에 대한 관심도 서태지 음악이 회오리를 일으키면서 생긴 현상이다. 서태지는 이런 비대중적인 장르를 대중에게 제시했으며 대중은 그의 훌륭한 음악을 받아들였다. (P.403)


저자의 편협한 지식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Rage Against the Machine과 Korn, Limp Bizkit를 한꺼번에 묶기에는 Rage Against the Machine의 출현(?) 시기가 꽤 차이가 난다. 서태지의 '울트라맨이야'라는 훌륭한(??) 음악과 영향력을 얘기하기 위해 한꺼번에 인용한 부분이라 하겠다. 문맥 상 서태지가 대중들에게 Rage Against the Machine, Korn, Limp Bizkit을 제시했고 그 음악들은 마치 그의 음악인 것처럼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졌다는 방식으로 곡해가 가능한 부분이다.

서태지 팬들은 스스로의 한계를 드러냈다.

1. 사전심의 제도의 폐지는 서태지의 문화적 영향력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시대유감 가사의 부활에서부터 사전심의제도 폐지까지에는 서태지와 아이들 팬의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움직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거기에 현실인식과 즉각적인 대처는 서태지와 팬들에게 승리를 가져왔다. (P.369)

 

서태지 팬들은 사전심의 제도 폐지를 서태지와 자신들이 이루어낸 투쟁과 승리의 역사인 줄 안다. 정태춘이 이미 그의 앨범 '아! 대한민국...'을 시작으로 사전심의 제도 폐지를 위한 거의 모든 밥상을 차려놓은 상태에서 숟가락만 올려놨음을 모르고 말이다.

 

2. 지난 2002년 월드컵을 축제로 만들었던 '붉은 악마'나 2003년 대선을 승리로 이끈 '노사모'가 채택한 방법, 즉, 사이버 공간에서 토론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고 온,오프라인을 통합해 활동함으로써 대중의 공감을 얻어내고 참여를 이끌어 내는 방식은 서태지 팬들이 주도했던 시대유감 사건에서 전형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P.374)


이 땅에서 일어난 모든 승리의 성과들이 서태지 팬들에게 있다는 식으로 끌어들이는 논리까지..

 

3. 서태지의 음악을 받쳐주기 위해서는 팬들도 변화해야 했다.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팬들은 형광 옷이나 야광봉을 흔들었지만, 다시 돌아온 서태지를 따라 그들도 록 마니아가 되어갔으며 스탠딩 공연과 슬램에 점차 익숙해져 갔다. (P. 403)

 

저자는 이 부분에서 서태지 팬들의 결정적인 한계를 커밍 아웃한다. 비판과 분석 등의 이성적인 방식을 통하지 않고 자신들이 좋아하는 서태지가 다르기에 서태지의 팬들도 여타의 뻔한 빠순이들과는 달라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의 발로로 인하여 변화했다는 고백이다. '변화해야 했다'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고백에 박수를...

정당한 평가가 아닌 왜곡된 평가는 모두에게 해가 된다.

'한국 대중음악사'라는 책은 현재 절판되었다. 몇 부를 찍어서 몇 부가 팔렸는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이 책이 절판되었음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이 땅의 음악에 대해 관심과 궁금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제발 이 책만은 읽지 않기를 바란다.

 

이 책의 마지막은 다음과 같이 끝을 맺는다.

 

과거는 정치의 시대였고 정치를 이해하는 것이 바로 그 사회를 이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변화된 1990년대는 정치적인 잣대만으로는 이해될 수 없는, 미스터리의 시대였다. 이제 서태지와 문화혁명을 이해함으로 그 의문점은 풀리게 되었다. (P. 435)

 

미스터리의 시대였다는 1990년대를 서태지와 문화혁명을 이해함으로 의문점이 풀리게 되었다고? 서태지에서 시작하여 서태지로 끝나는 맹목성이 1990년대를 이해하는 핵심이라는 분석이 더 미스터리하다. 제발 시간이 흐르고 서태지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이루어지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환상 속의 그대들이 깨어나기를 기대한다.

독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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